박혜라는 시인이다. 그는 화포(畵布) 위에 비내리는 거리의 정경(情景)을 "묵언(墨言)의 시"로 그려낸다. 그라 고집스럽게 일관(一貫)하고 있는 "우요일의 서정"은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유리를 통해 투사되는 비에 젖은 포도(鋪道)와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 우산을 받쳐든 군상들의 고독한 실루엣들을 버무려, 절묘한 채색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내는 몽환(夢幻)의 소네트(sonnet)이다.
박혜라의 화풍은 독창적이고 독보적이다. 그의 화풍은 초기, 회화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꽃, 정물, 풍경, 누드 등의 먼 순례(巡禮)를 거쳐, 비를 모티브로 하는 "몽롱화법(朦朧畵法)"외 "우요일(雨曜日) 연작(連作)"으로 귀착한다.
박혜라 우요일의 연작에는 언제나처럼 비와 자동차, 우산을 쓴 군상들이 등장한다. 비는 원사와 자연의 표상이다. 도시의 거리에서 내리는 비는 거대한 메트로의 문명을 자연의 순수로 회귀시키고자 한다. 빗물의 세례 속에서 도시의 거리는 정화되고, 고즈넉해지고, 문명의 광기로부터 한 걸음 뒷걸음친다. 그러나 문명의 총아인 자동차는 전조등 불빛을 휘두르며 원시로의 퇴행에 저항한다. 그리고 우산이 있다. 우산은 원시와 문명의 날카로운 대극(對極)을 화해시키고 군상들의 소외와 고독을 포옹한다.
박혜라의 비는 고독과 우수, 그리움과 향수(鄕愁)의 메타포이다. 그는 우요일 연작(雨曜日 連作)을 통해 빗물이 흐르는 창유리에 투영되는 거리의 서정을 우수(憂愁)와 몽환(朦幻)으로 그려낸다. 화포(畵布) 위에 내리는 비는, 물안개처럼 가슴으로 스미고, 비에 젖은 거리, 빗줄기 속에 어룽지는 자동차의 불빛, 우산 속에 묻혀 걸어가는 군상들의 아득한 실루엣...... 그것은 다름아닌, 급격한 메트로의 문명 속에 잊혀져 가는 초원의 빛, 멀어져간 사랑,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젊은날의 로망의 반추(反芻)이다.
화가 박혜라는 순수하다. 풍진(風塵)의 세상을 살아온 연륜의 무게와 하데스의 문턱을 넘나든 병마와의 사투에도 그의 심상은 투명할 만큼 맑고 순수하다. 화상들의 은근한 권유에도 오직 "우요일의 연작"만을 고집하는 우직(愚直)도 그의 순수의 한 단면이다. 우리 시대의 화가 박혜라의 빛나는 감성과 정진을 기대한다.
우기(雨期)의 八月, 오늘도 도시의 거리에는 "박혜라의 비"가 내리고 있다.
2007. 8. 11 居 士 金 永 倍 |
